라쇼몽, 누구 말을 믿어야 하나? 영어, 수학, 국어 학원 말이 다 달라.

대학교 1학년 교양 ‘심리학 개론’ 시간에 교수님이 ‘라쇼몽’이란 영화를 추천해 주셨다. 한 사무라이가 아내와 같이 길을 가던 중, 아내의 미모를 탐낸 산적의 습격을 받는다. 결국 사무라이는 죽은 채 발견되는데, 사건을 조사하는 관청에서 산적의 말과, 아내의 말, 그리고 강신한 사무라이의 말이 모두 달랐다. 누구도 거짓말을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각자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진술을 했던 것이다. 20살, 실체적 진실은 반드시 하나라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몇 번을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영화였다.

중고등학교 입시상담을 하다 보면, 아는 만큼 힘들어하시는 부모님들을 자주 본다. 가끔은 대치동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입시컨설팅에서 분석한 두꺼운 자료집을 보여 주시는 분이 있는데, 거기에는 아이의 IQ, 적성, 진학 가능한 대학과 학과, 진로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상담을 오신 부모님은 아이의 진학과 관련해서 혼란스러워하고 계셨다. 무엇이 문제일까? 부모님께서 상담을 하신 입시전문가마다 이야기가 조금씩 달랐던 것이다. 수학 학원, 국어학원, 영어학원, 과학학원에서 들은 이야기가 다 달랐던 것이다. 물론 학교에서 들은 이야기가 학원에서 들은 이야기와 달랐던 것은 당연했고.

며칠 전에 영재고 준비 문제로 힘들어하시는 초등학교 6학년 부모님께서 찾아오셨다. 아이가 영재성도 있고 수학을 정말 좋아하는데, 갑자기 영재고에 가겠다고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수학 학원에 문의하니, 영재고 입시를 위해서는 KMO 입상 실적이 필요하다며 등록을 권했는데, KMO 준비를 하게 되면, 지금까지 해 오던 영어나 국어 공부가 흔들리게 될 것을 걱정하시는 것이었다.

라쇼몽, 모두 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아무도 거짓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는 현실, 자신들의 입장과 이해관계에 따라 일부분만 이야기하거나 과장하고 있는 현실.

먼저 수학 학원 이야기를 해 보자. 2019년 8월 칼럼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영재고 입시를 위해서 KMO가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를 풀려면 KMO에서 다양한 문제를 풀어 본 것이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KMO에 올인해야 영재고 합격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난달 칼럼에서 이야기한 이과생들의 문과침공도 마찬가지다. 수학에서 미적분을 선택한 학생들의 표준점수가 확률과 통계를 선택한 학생들보다 3점 이상 높기 때문에 문이과 통합형 수능 체제에서는 이과생이 유리하다는 이야기도 철저하게 정시에 국한된 이야기다. 어떤 사람은 수시(학생부 종합)에서도 확률과 통계를 선택하면 수능에서 수학 1,2등급을 받기 힘들어 수능최저를 맞추기 어렵기 때문에 문과생이라도 미적분을 선택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서울대는 학종 지역균형선발전형에서 4개 영역 중 3개 영역 이상 3등급 이내를 요구하고 있고, 수도권 대학에서도 수능최저 등급이 없는 전형도 많기 때문에 문과생이라면 미적분을 선택해 수학 등급을 올리는 것보다는 자신이 지원하는 대학의 전형에 따라 자신의 진로역량이나 내신등급을 올리는 것이 더 현명한 판단이 될 수 있다.

국어 학원에서 이야기하는 불수능이나 킬러 문항을 언급하면서 경제와 철학을 포함한 심화 지문 학습을 강조하는 것도 철저히 정시에 국한된 이야기이고 영어학원에서 이야기하는 TOEFL은 주옥같은 지문이 많기 때문에 수능에서 1등급을 맞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정보의 바다에서 표류하지 않기 위해서는 알아야 한다. 아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