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 금지법과 영재고 입시

‘학교 시험 및 교내 대회 등은 배운 내용에서만 출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이란 것이 있다. 일명 ‘선행학습 금지법’

정부가 법으로 선행학습을 막고 교육현장에서 선행학습이 교육적 효과가 없음을 수없이 이야기해도 선행학습의 필요성에 대한 학부모들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오늘은 선행학습이 필요한지, 필요하면 어디까지 필요한가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대치동에서 부모님들끼리 모여서 아이들의 공부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 뭘까? 아마, ‘어느 학원에 보내냐?’라는 질문 다음으로 ‘수학 진도 어디 나가냐?’라는 질문일 것이다. ‘선행학습이 필요하냐, 필요하지 않냐?’라는 것을 이야기하려면 지금 부모들이 ‘왜 선행학습을 시키는가’라는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한다. ‘학교에서 좋은 내신을 받기 위해서!’라는 낭만? 적인 답변이나 ‘지랄 총량의 법칙’을 이야기하면서 사춘기 때 겪는 학업 결손을 따라잡기 위해서라는 현실? 적인 답변으로는 현재 초등학교 6학년이 고등학교 수학을 배우는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선행학습이 가장 문제가 되는 과목은 당연히 수학이다. 영어나 국어, 과학도 선행학습이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 수학처럼 ‘지금 진도 어디 나가냐?’라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럼 유독 수학이 선행학습의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히 영재고 입시 때문이다. 누구나 돌까지는 자기 아이가 영재인줄 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현재 공부 잘하는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들의 최대 관심사는 ‘자기 아이를 어떻게 하면 영재고에 보낼까?’일 것이다. 영재고에 떨어지면 과학고에 지원할 수 있고 과학고도 떨어지면 자사고에 지원할 수 있는 현재의 입시제도는 영재고에 대한 로망을 더욱 부채질한다.

영재고 전형은 서류평가와 영재성 검사, 영재성 캠프로 구성되어 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영재성 검사로 일컬어 지는 수학∙과학의 지필 평가다. 이 지필 평가 때문에 초등학교 6학년이 고등수학을 공부하는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 교육 강국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4,5학년이 정석을 들고 다니는 것도 많이 보았다.)

영재고 요강에 ‘중학교 교육과정의 수학 과학에 대한 교과지식을 바탕으로 한 융합적 사고력, 창의적 문제해결력’을 평가하겠다고 적혀 있지만, 이 말을 글자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영재고 입시가 많이 변하고 있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를 풀려면 여전히 고등수학 과정을 배운 학생이 유리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재고 입시는 중학교 1,2학년 재학생도 응시를 할 수가 있고 중2 때 거의 모든 학생들이 응시한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초6까지는 영재고 준비에 대한 진도를 마치고, 중1때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중2 때 실전을 위해 입시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결국 영재고 입시가 변하지 않는 한, 선행학습 금지법은 있으나 마나 한 ‘그림의 떡’일 뿐이다.

(다만, 영재고 입시를 준비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잊어도 좋다.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 칼럼에…..)